제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미공군 B-29 폭격기는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에 투하했다.
폭탄은 도시의 90%를 잿더미로 만들었고 그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오랜 시간에 걸쳐 수천 명이 방사능 노출로 인해 죽게 만들었다.
히로시마 투하 3일 뒤, 두 번째 B-29 폭격기는 나가사키에 또 한 차례 원자폭탄을 투하해 4만 여명을 죽였다.
이후 일왕 히로히토는 1945년 8월 15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했다. 당시 그는 “새롭고 잔인한 폭탄”의 어마어마한 위력을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 위티피드(Witty Feed)에서는 핵무기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이후의 사진들이 공개되어 핵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 피어오르는 버섯 구름
나가사키 원폭 투하 당시 나가사키에서 9.6km 떨어진 코야기 지마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미 공군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는 나가사키 시 북쪽에 ‘팻 맨’이라는 이름의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 원폭 투하 직후의 사진
◆ 투하 후 2개월이 지난 뒤의 사진
원폭 투하 후 두 달이 지난 나가사키의 거리를 한 일본인이 걸어가고 있다.
◆일본군의 모습
원폭 투하 직후 일본군들이 도시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 불타버린 도시
왼쪽 사진: 원자폭탄의 섬광열에 피부는 전부 다버리고 뼈밖에 남지 않은 일본인 사망자의 시신
오른쪽 사진: 핵 폭발로 인해 훼손된 나가사키 시의 십자가
◆ 히로시마 원폭 투하 직후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
◆ 원폭으로 파괴된 히로시마 시의 전경
◆ ‘리틀 보이’가 만들어낸 엄청난 섬광열
왼쪽 사진: 리틀 보이가 투하되었던 8시 15분에 멈춘 시계
오른쪽 사진: 뜨거운 섬광열로 인해 히로시마의 한 은행의 계단에 새겨진 사람의 흔적
◆ 화상 당한 피해자
전신에 화상을 입은 이 남성은 니노시마 섬에 위치한 육군 이동 검역소로 이송 되어 치료를 받았다. 그는 원폭 투하 당시 투하 지점으로부터 1km 안에 있었다.
◆ 핵폭발의 후유증
◆ 전신에 화상을 입은 피해자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직후 병원에 입원한 생존자들의 모습이다.
◆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
◆ 피해 규모를 조사 중인 일본 공무원
왼쪽 사진: 폭탄 투하 직후 한때 화려했던 시청의 회의실에서 대책 수립 회의를 하고 있는 히로시마 공무원들
오른쪽 사진: 파괴된 히로시마 시를 둘러보고 있는 공무원들
◆ 폭탄 투하 일 년 뒤
원폭 투하로부터 1 년 후 폭격에 훼손된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 고아가 된 아이들
◆ 폐허가 된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
폭탄 투하로 인해 폐허가 된 거리를 걷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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