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시민의식’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수동의 홍익대 정문 앞 거리에서 시민들이 무단횡단을 하고 있다./상수동=신진환 기자 |
“거리가 짧고 다른 사람들이 건너서….”
한 여대생이 이리저리 눈치를 보더니 무단횡단을 한다. 달리던 차량은 이 여대생의 무단횡단을 봤는지 순간 속도를 줄였다. 차창으로 보인 운전자는 당장에라도 한마디 하고 싶은지 얼굴이 일그러졌다.
취재진은 이 여대생이 횡단보도를 불과 20m 앞두고 무단횡단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 대학생 최모(23·여) 씨는 “남들이 하니까 무의식적으로’ 무단횡단을 했다”고 했다. 최 씨의 말대로였다. 누군가 무단횡단을 하자 너나 할 것 없이 도로 위로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겼다.
무단횡단은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위법행동이다. 최 씨도 무단횡단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는 “차가 지나가는데 당연히 위험하죠. 그런데 빨리 갈 수 있으니까 (무단횡단을)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겸연쩍어하면서도 위법한 행동에 대해서는 무덤덤한 태도였다.
취재진은 7일 오후 평소 보행자들의 무단횡단이 잦은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홍대) 정문 앞 도로를 찾아 그 실패를 살펴봤다. 약 1시간 30분 동안 지켜본 결과 무법천지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대학가 주변답게 젊은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무단횡단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차들이 “빵! 빵!”하고 경적을 울렸다. 그렇지만 경적 소리는 허공을 가를 뿐 의미가 없었다. 시민들은 흠칫 놀라면서도 무단횡단을 멈추지 않았다. 외국인도 다를 바 없었다.
‘외국인도 무단횡단이 익숙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홍익대 앞 거리에서 외국인 남성 2명이 무단횡단을 하고 있다./상수동=신진환 기자 |
찬찬히 살펴보니 무단횡단도 여러 유형이 있었다. 차가 지나가도 개의치 않는 ‘무대포형’, 남이 가면 뒤따라가는 ‘꼬리물기형’, 차가 없을 때 재빨리 길을 건너는 ‘눈치형’, 횡단보도는 아니지만 보행자 신호에 맞춰 통과하는 ‘묻어가기형’ 등이 대표적이다.
홍대 정문 앞 도로에 횡단보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약 300m 내에 4개의 횡단보도가 있다. 그런데도 무단횡단을 하면서 ‘죽음의 질주’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누군가가 무단횡단을 하면 뒤따르는 보행자가 많았다.
왜 그럴까. 보행자들은 대부분 빠르게 건널 수 있고 횡단보도까지 가기 귀찮아서 무단횡단한다고 입을 모았다.
오모(21·여) 씨는 “신호를 기다려야 하고 횡단보도까지 가는 것도 솔직히 귀찮아서 빨리갈 수 있다는 생각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조모(26) 씨는 “홍대 앞 거리는 과거부터 무단횡단이 비일비재했다”면서 “사고도 없고 운전하는 사람이 많이 양보해줘서 무단횡단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차 역시 이 구간에서 제속도를 못냈다. 언제 어디서 보행자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행 신호에도 무단횡단하는 시민들 탓에 신호를 놓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내가 가는 길이 길이다?‘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홍대 정문 앞 거리에서 횡단보도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보행실선으로 다니지 않는 시민이 많았다./상수동=신진환 기자 |
한 운전자는 보행자들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터트렸다. 식재료 납품업을 하는 강모(41) 씨는 “혹시라도 사고가 나봐. 운전자가 거의 가해자야. 치료비도 물어줘야지, 경찰 조사받고 합의하고 그러면 나만 손해라고. 결국 조심해서 가야 하는데 보행자가 해도 해도 너무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무단횡단은 엄연히 위법이다. 도로교통법 제10조 2항은 횡단보도, 지하도, 육교나 그 밖의 도로 횡단시설이 설치된 도로에서는 그 곳으로 횡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칙금도 부과된다.
또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기준 교통사고로 사망한 보행자 58명 중 ‘보행자 부주의’로 사망한 사람이 전체에서 70.6%에 해당하는 41명에 달했다. 보행자 부주의 사망사고 중에서도 도로 무단횡단이 22명(37.9%), 횡단보도 무단횡단이 14명(24.1%)으로 조사됐다.
나 하나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아닌 법을 준수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더팩트ㅣ성수동=신진환 기자 yaho1017@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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