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영국을 뒤흔들었던 엽기적 ‘연쇄살인마’

2018년 1월 9일   정 용재 에디터

40년 전 ‘맨채스터의 괴물’이라 불리던 연쇄살인범이 있었다.

그는 고민도 망설임도 없이 어린 세 소녀의 목숨을 잔인하게 앗아가 도시 전체를 공포 속에 빠뜨렸고, 그가 수사를 피하기 위해 강행한 방법들은 악몽이라 불릴 만큼 끔찍했다.

그의 탄생부터 끔찍한 범행, 그리고 최후까지를 정리해봤다.

▶ 살인마의 탄생

1972년에 31살이던 하디는 한 남성을 손도끼로 부상을 입혀 5년간 수감되었다.

그는 1974년 11월 18일에 와이트 섬의 알바니 감옥을 나와 몇 주 가지 못해 첫 살인을 저질렀다.

그는 감옥에 있을 적, 자신을 배반한 친구 스탠리 오브라이언과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편지를 보낸 14살 여자친구 베벌리 드라이버를 찝어 복수를 위해 살인하겠다고 계획해두었다.

하디는 나중에 경찰에게 “나는 기차에 앉아 ‘오브라이언과 베벌리’라고 계속 반복해 읊조렸다”고 서술했다.

하지만 맨채스터 모스턴에 있는 부모님의 집에 도착했을 때 하디는 오브라이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하였다.

▶ 비운의 희생자들

하디는 도끼를 들고 베벌리의 집을 찾아갔지만, 베벌리는 보지 못했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중이던 15살의 레즐리 스튜어트가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하디는 레즐리의 목을 도끼로 내려쳤고 인근 점토 채취장에 시신을 매장하였다.

그 후 몇 주에 걸쳐 하디는 그 곳을 다시 찾아 시신을 토막내고, 그 토막들을 여러 곳에 유기해 묻었다.

레즐리의 머리는 호수에 버려졌다.

경찰은 레즐리를 실종 신고에 올렸지만 21개월 후에서야 하디의 자백으로써 그녀의 행방이 밝혀졌다.

하디는 레즐리의 반지를 빼 다른 여자에게 “사랑의 정표”로써 선물하였다.

그리고 그는 1975년 7월에 18살 완다 스칼라를 살인하였다.

하디는 모스턴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3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벽돌로 내리친 후 스타킹을 벗겨 그녀의 목을 졸랐다.

그리고 시체를 묻기 전 그녀의 젖꼭지 한 쪽을 입으로 물어 뜯어냈다.

하디는 완다의 피에 절인 옷과 그녀의 손가방을 “소름끼치는 트로피”로 간직했다.

그 다음 희생자는 회식 후 집에 가던 길에 쇼핑몰에서 도둑질을 하려던 하디를 목격한 17살의 샤론 모소프이다.

샤론은 목이 졸린 후 나체로 그녀의 자택에서 300미터 떨어진 수로에 버려졌고, 그녀 역시 젖꼭지 한 쪽이 뜯긴 채였다.

시체에 남겨진 그의 이빨자국으로 경찰이 그를 추적할 것이 후에 두려워지자, 하디는 시체가 버려진 곳으로 다시 들어가 대갈못으로 시체의 가슴을 긁어내 흔적을 없앴다.

샤론의 시신은 다음 날 아침, 로치데일 수로에서 인근의 낙농자에 일하는 사람에게 발견되었다.

후에 구치소에 감금된 하디는 손톱 다듬는 줄을 이용해 자신의 이빨을 갈아 살인과 연관된 증거들을 없애려 노력했다.

형사들은 그를 심문했지만, 하디의 내연녀 셸라 패로우가 허위 증언을 던짐으로써 그는 풀려나고 말았다.

하지만 후에 그가 크리스찬 캠벨이란 21살의 여성이 하디의 공격을 죽음을 무릅쓰고 벗어나면서 경찰은 다시 수사에 나섰다.

스톡포트에 위치한 셸라 패로우의 자택에 숨어있던 하디를 형사들이 추적해내었고, 결국 그는 40 쪽이 넘는 자백을 서술해냈다.

▶ 재판과 응징

경찰에 체포되자 하디는 레즐리 스튜어트의 살인과 그녀의 시신을 토막 냈음을 실토했고, 그녀의 시신이 유기된 곳들로 경찰을 안내하였다.

하디는 자신이 정신 이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설득하려 했지만, 맨채스터 형사 법원에의 판결에서는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살인죄를 선고하였다.

한 정신과 의사는 그가 살인을 다시 저지를 수 있는 “끔직하게 악하고 위험한 인간”이라고 설명하였다.

당시 판결을 내리던 판사 콜필드는 하디에게 “이 구역은 행복한 곳이다. 하지만 당신이 없다면 훨씬 더 행복할 것이다.

당신은 세 소녀를 끔찍하게 살인한 죄를 선고 받았고, 평생 감옥에서 살게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와 같이 하디는 살인죄뿐만 아니라 세 번의 종신형까지 선고 받았다.

그 후에도 수년간 하디가 그 세번 뿐이 아니라 1971년 4월에 강간 후 살인되어 한 콜리허스트의 술집에 버려진 17살의 도로시 레이든의 살인까지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사건이 하디의 알려진 세 살인사건의 전조였을 것이라고 믿지만, 2008년에 경찰이 발표한 과학 수사 결과에 따르면 하디는 혐의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또한 2008년에 하디는 징역을 30년으로 줄여달라고 요청했지만, 고등 법원의 판사 티어르는 하디가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후회도 표하지 않는다며 이를 거절하였다.

하디는 2012년 9월 23일 웨이크필드 감옥에 있는 그의 감방 안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이틀 후 병원에서 6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희생자 샤론 모소프의 아버지 랄프는 맨채스터 이브닝 뉴스 (Manchester Evening News)에 “우리 가족은 이 것(하디의 죽음)이 여태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 중 가장 최고의 일이라 생각한다. 로또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다. 그가 다시 나와 어떤 짓을 하지 못한다는 게 우리의 큰 걱정을 덜어주었다. 그가 비록 수감되어 있었지만 그를 잊을 수는 없었다. 항상 마음 속에 머물러있었다. 그가 한 짓은 냉혈한 살인이었다. 그는 짐승이었다.”고 전했다.

온라인이슈팀 <제보 및 보도자료 editor@postshare.co.kr 저작권자(c) 포스트쉐어,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사진 = Daily Mirror, Manchester Evening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