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초고령사회를 대비해 추진 중인 지역보건 및 일차의료 권고안을 두고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진료 범위의 지역 단위를 이른바 ‘소생활권(거주지)’으로 묶어 제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개원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탁상공론”이라며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내과의사회는 성명서를 내고 “의료혁신위원회 산하 초고령사회 의료체계전문위원회가 발표한 권고안의 ‘소생활권’ 개념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제시한 ‘소생활권’ 개념은 지난 8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확정된 범정부 인공지능(AI) 기본의료 전략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의료 서비스 배치의 공간적 단위를 환자의 거주지 기반인 ‘생활권’으로 한정 짓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대해 개원가는 해당 기준이 도입될 경우, 보건지소 등 공공 인프라 배치뿐만 아니라 동네 의원급 의료기관의 진료 범위와 환자 등록 수까지 강제로 제한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내과의사회 측은 “권고안이 그대로 적용되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진료 범위는 행정동으로 국한되고 환자 수도 제한을 받게 된다”며 “이는 명칭만 다를 뿐 사실상 주치의에게 환자 수를 할당하는 ‘인두제’와 다름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정부의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추진 전략에 등장하는 ‘소진료권’과 이번 ‘소생활권’의 관계 규명이 불명확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특히 의사회는 환자의 진료 범위를 ‘거주지 기준’으로 묶는 방식 자체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환자가 병원을 선택하는 기준은 질환의 종류, 급성·만성 여부, 이동 거리, 방문 가능한 진료 시간대 등 매우 복합적인데, 이를 거주지라는 하나의 틀로 제한하는 것은 국민의 의료 선택권과 기본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행위라는 주장이다.
내과의사회는 “국민의 의료 이용을 거주지에만 귀속시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며 “부득이하게 공간 단위를 적용해야 한다면, 거주지 단일 귀속이 아닌 직장과 학교 소재지 등 실제 생활 동선에 따른 복수 귀속을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단순한 도시계획상의 행정 구역이 아닌, ‘헬스맵 유입·유출 자료’ 등 실제 환자들의 의료 이용 흐름에 근거한 과학적 단위가 사용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네의원이 이미 제 기능을 다하고 있는 지역에 (가칭)공공보건의원을 무분별하게 신설하려는 동향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의사회는 “공공보건의원 도입은 의료기관이 전무한 취약 지역에 한정해야 하며, 그 업무 범위 역시 사전에 공개해 의료계와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끝으로 대한내과의사회는 “제도를 실제로 수행할 일차의료계 대표들을 전문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하고, 권고안 상정 및 공개 토론회에 앞서 충분한 의견 진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만든 설계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정부의 의료 개혁 드라이브가 속도를 내는 가운데, ‘거주지 기반 의료 제한’ 논란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