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결국 또 터져버린 배우 하영 집안 ‘가짜 이력’ 파문

2026년 8월 18일   김주영 에디터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이 증조부인 고(故)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인 가운데, 이번에는 하영의 부친이 과거 언론에 기고했던 글에서 증조부의 이력을 부풀리거나 허위로 작성했다는 ‘가짜 이력’ 의혹이 제기돼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15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에는 하영의 부친인 안병문 원장이 과거 작성한 기고문의 역사적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글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 “지석영과 함께 의대 전신 교관?”… 역사 속 진짜 주인공은 ‘김익남’

문제가 된 것은 안 원장이 지난 2002년 중앙일보에 ‘큰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이다. 당시 안 원장은 “우리 집안은 몇 안 되는 의료 명문”이라고 자랑하며, “증조부(안상호)께서는 종두법 실시로 유명한 지석영 선생과 함께 서울대 의대의 전신인 관립의학교 교관으로 계셨고, 초대 한성의사회장을 지내셨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의 역사적 기록은 안 원장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한제국 정부의 명을 받아 지석영과 함께 관립의학교 교관으로 재직하며 근대 한국인 의사를 배출한 인물은 안상호가 아닌 ‘김익남’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 등의 자료에 따르면, 김익남은 1899년 7월 도쿄지케이의원의학교를 졸업한 뒤 1900년 8월 귀국해 관립의학교 교관으로 취임했다. 그는 4년간 32명의 근대 한국인 의사를 배출했으며, 1908년에는 일본인 의사단체에 맞서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의사단체인 의사연구회(현 대한의사협회)를 결성해 회장을 역임한 역사적 인물이다. 서재필이 당시 미국 국적이었음을 감안할 때, 김익남은 한국 국적자로서 최초로 근대식 정규 의학 교육을 받은 의사로 평가받는다.

반면, 안상호의 실제 행적은 달랐다. 그는 1904년 10월 교관으로 임명되긴 했으나 귀국을 거부하다 불과 석 달 만에 해임됐다. 이후 관립의학교가 1907년 3월 일본 통감부에 의해 강제 폐교된 이후인 3월 21일에야 비로소 조선으로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 ‘4대째 의사 가문’ 자랑의 씁쓸한 이면… ‘완벽한 일본인’ 자처한 증조부

하영은 앞서 여러 예능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통해 “증조부께서 한양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셨다”라며 자신을 ‘4대째 의사 가문’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해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방송 이후 안상호가 일제강점기 당시 대표적 친일파인 이완용이 속했던 친일 단체 ‘대정친목회’의 평의원을 지냈다는 사실이 발각되며 거센 역풍을 맞았다. 특히 안상호는 당시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매운 음식도 못 먹는다. 자녀들이 집에서 일본어만 사용하게 해 완전한 일본인 가정으로 키우고 있다”는 망언을 한 사실까지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논란이 확산되자 민족문제연구소는 14일 공식 입장문을 내고 “안상호의 친일 행적은 명백하다”고 못 박았다. 이어 “이번 논란의 본질은 조상의 식민지 협력 이력에 대해 최소한의 역사적 성찰조차 없이 방송에서 발언해 대중에게 상처를 준 ‘역사 인식과 성찰 부재’에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결국 하영은 지난 1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필 사과문을 게재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는 “부끄럽게도 무지한 상태로 증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의 자랑처럼 꺼내 왔다”며 “일제 강점기라는 뼈아픈 시간을 지낸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족사를 가볍게 언급했던 것을 깊이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친일 행적에 이어 숭고한 다른 독립적 의료인의 업적을 가로챈 듯한 ‘가짜 이력’ 의혹까지 추가로 터지면서, 하영 일가를 향한 대중의 싸늘한 시선은 당분간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