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한미연합군사훈련 대폭 축소’를 지시한 진짜 이유가 한국의 더딘 ‘대미 투자 속도’ 때문이라는 미국 현지 언론의 분석이 나왔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이 이란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군사적 요청을 거절한 것을 내세웠지만, 이면에는 이재명 정부의 경제적 약속 이행에 대한 강한 불만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지적이다.
17일(현지시간)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은 한국에 대한 미국 행정부 전반의 경제적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불만의 핵심 뇌관, 지지부진한 ‘3500억 달러’ 대미투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한미연합훈련 축소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이재명 대통령에게 이란의 비핵화 동참 및 군사작전 협조를 요청했으나 “사양하겠다(No thanks)”는 답을 들었다며,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 나라를 일일이 보호할 수는 없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하지만 미국 측 관계자들의 전언은 다르다. 호르무즈 해협 지원 요청 거절은 표면적인 핑계일 뿐, 핵심은 이재명 정부의 더딘 대미 투자 집행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3500억 달러(약 495조 원) 규모의 대미투자 계획을 약속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부과했던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후 한국은 이 중 1500억 달러를 조선업에 배정했으나, 나머지 2000억 달러의 구체적인 투자처는 아직까지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은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한 미국 측 관계자는 폴리티코에 “한국과의 협상이 예상보다 너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며 “그들은 역대 가장 느린 협상가들(the slowest negotiators ever)”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한국은 이번 투자를 일반적인 비즈니스처럼 취급하며 모든 세부사항을 꼼꼼히 점검한 뒤 발표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 갈등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쿠팡 과징금 6246억 원도 불씨… ‘속도전’ 일본과 노골적 비교
경제적 마찰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 한국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미국 기업인 쿠팡에 6246억 원 규모의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한 조치도 트럼프 행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다. 당시 백악관은 “미국 기술 기업을 표적으로 삼거나 차별하는 한국 정부의 규제에 지속적인 우려를 표한다”며 경고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미국은 노골적으로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 합의를 맺은 일본의 경우, 이미 6개 투자 프로젝트에 최종 서명했으며 대기 중인 잠재적 목록도 넉넉히 확보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직접 일본의 에너지·발전·광물 등 3개 사업을 첫 대미투자 프로젝트로 선정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반면, 한국은 아직 단 하나의 최종 프로젝트도 확정 짓지 못했다. 폴리티코는 “한국이 2029년 1월이라는 마감 시한 전에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사태가 안보와 경제를 하나로 묶어 압박하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레버리지(지렛대)’ 전술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소식통은 “대통령은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것을 좋아하며, 실제로 이를 거침없이 사용한다”고 평가했다. 한미연합훈련이라는 안보 카드를 흔들어, 이재명 정부의 신속한 대미 투자와 경제적 양보를 얻어내려는 고도의 청구서라는 분석이다.